난 만으로는 서른 넷이지만
이미 인생의 7할을 혼밥러로 지냈으며
하루 한 끼는
무조건 혼자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프로 혼밥러이자 애찬론자이다.
단순히 집에 있는 밥과 국이나 찌개, 반찬이나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
치킨, 피자같은 배달메뉴로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넉넉하게 보내거나
아니면 밖에서 사먹으며 사람들 구경도 하고
심지어는 뷔페나 고깃집처럼
때론 혼자 가기 망설여지는 곳에서
혼자만의 특별한 외식을 가지기도 한다.
나는 사실
집밥보단 외식파인데
뻔한 집밥 보단
식도락 기행이 일상의 활력소가 되어 줘
되도록이면 자주 가지려고 하고 있다.
물론 어머니가 쉬시는 날엔
모시고 나가서 외식을 할 때도 많고
어쩌다 정말 그나마 가까운 몇 사람이나
가끔 피할 수 없는 업무 상의
점심 또는 저녁 약속 정도 빼고는
하루 중 한 끼 정도
혼자서 식사를 하는 시간을 꼭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약속, 내가 원하지 않으면
캔슬할 때도 있지만...
이 혼밥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기 전,
사람들이 예상하는 시기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혼밥러였는데
처음부터 내가 원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 혼밥이 주는 자유와 낭만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상대방의 기호에 일일이 맞출 필요 없고
먹는 속도 때문에 눈치를 볼 필요 없으며,
무엇보다 부담스럽고 불편한 사람과의
무의미한 대화 역시 할 필요도 없이
온전히 음식과 내가 보낼 수 있는
자유롭고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듣기 편한 감미로운 음악이나
간단한 볼 것 정도만
양념으로 추가하면 더 좋다.
불필요한 제3자는 사양이다.
처음부터 혼밥이 편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 부터 우여곡절과 상처가 많아
누구에게도 쉽사리 털어 놓을 수 없는
사연과 비밀, 고민이 늘어나
그렇지 않아도 소심한 성격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돼
거의 혼자 식사하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특히 어린 시절,
전학을 간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한동안 급식소에서 혼자 구석에서
외롭게 먹었는데
그땐 따가운 시선과 나를 향해
수군거리는 소리가 싫어
그 자체만으로도 고통인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 외톨이로 지냈던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해서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기도 했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식사타임을 갖는 사람들을
지나가다 보거나 티비로 볼 때면
외로운 마음에 많이 부러워하곤 했었다.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식당에 가서 혼자 식사를 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어쩔 수 없이 혼자 먹어야 하는 경우에는
차라리 굶고 지나갈 때도 많았다.
시간이 흘러
나도 사회에 진출해 직장에 다니고
몇 번의 연애 기간을 거쳐오는 동안
상대의 입맛과 취향, 먹는 속도에 맞춰야 하고
중간중간 의미 없거나 불편한 대화가 이어져도
싫은 내색 한 번 할 수 없는 그 답답한 상황과
일일이 상대에게 다 맞춰 줘야 하는 상황 때문에
노이로제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직장에서의 점심이 그러했는데
대부분 상사의 입맛이나 취향에 일일이 맞춰야하고
친하지 않은 동료와도 어울려야 하는 게 싫었으며
식사하면서 불편한 업무 이야기라던가
불쾌한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직장 생활 중, 그나마 마음 편한 시간이어야 할
그 시간은 피곤하며 불쾌한 시간이었다.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쌀국수나 파스타처럼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메뉴를
억지로 먹어야 할 때가 많아 불편했고
가족과 식사를 할 때도
원하지 않는 반찬을 꾸역꾸역 먹어줘야 하는
그 순간이 참 힘들게 느껴졌다.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의 원천이자
나의 색다른 비타민인 식사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지
방해를 받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혼자서라도
틀을 깨부수고 뭐든지 하자고 결심했고
처음에는 간단한 패스트푸드부터
나중에는 한 끼 정찬이 나오는 곳으로,
그 후 부터는 뷔페와 고깃집에서의 혼밥은 물론,
호프집에서의 혼술까지
영역을 넓혀나갔다.
언제, 어떻게, 무엇을 먹든
누구에게 굳이 맞출 필요 없이
온전히 내 마음 가는대로 선택할 수 있고
마음 편하게 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그 행복
이제는 이 자유와 행복을
너무 사랑하는 것에 대한
부작용(?)이 있는 것일까?
누구와 어울려 식사를 하는 게
이제는 부담부터 느껴지곤 한다.
혼밥할 때
100% 외롭지 않냐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아직 이 자유 뿐만 아니라
나와 갖는 이 소중한 시간을 사랑한다.
나는 그래서 오늘도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
고민이 아닌, 행복한 상상으로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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